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난의 변 (문단 편집) ===== 정촌패 전투 ===== 당시 이경륭이 건문제로부터 받은 병력은 무려 '''500,000명'''에 달했다. 모두 연왕은 이제 박살나리라고 간주했지만, 주체는 되려 이 소식을 듣고 >'''"저 놈들이 나를 도와주는구나. 이경륭 그놈이 무슨 재주가 있단 말인가?"''' 하고 껄껄 웃어버렸다. 이경륭이 북진할 때 요동에 있었던 장수인 '''오고, 경환, 양문'''은 요동병을 이끌고 영평(永平)을 포위하고자 진군했다. 양방향으로 적을 둔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주체는 >'''"어차피 이경륭 저 놈은 겁이 많아서 함부로 공격하지 않는다"''' 고 무시하고는 장옥 등과 함께 오고의 요동병을 먼저 공격해 쫓아버렸다. 이때 이경륭은 부대를 이끌고 연왕의 근거지인 북평을 포위했으나 연왕의 아들 '''주고치'''가 굳게 버티고 수비하면서 적을 막아냈고,('''북평 포위전''') 11월경 주체는 이경륭과 다시 싸우고자 돌아왔다. 이때 적과 싸우려면 백하(白河)를 건너야만 했었는데 백하가 흘러넘쳐서 도저히 건널 형편이 아니었다. 주체도 막막한 심정으로 하늘에 기도했는데 천만다행이게도 도착했을 무렵에는 강이 얼어 있어 정난군이 건너서 넘어갈 수 있었다. 이를 본 이경륭은 도독 '''진휘'''(陳暉)를 정난군의 후방으로 돌아가게 했는데 주체는 군대를 나눠 이를 격파했다. 도망치던 진휘의 군대가 백하를 건널 무렵 정난군이 지날 때는 멀쩡하던 얼음이 갑자기 깨져서 수많은 병사가 그대로 익사했다.('''백하 전투''') 이후 주체는 정촌패(鄭村壩)에서 황제군과 직접 교전했다. 주체가 직접 정예 기병을 이끌고 적의 7영을 [[개발살]]내자, 여러 장수가 즉시 재공격해 이경륭은 형편없이 박살났다.('''정촌패 전투''') 이경륭은 우선 물러나 산둥성 덕주(德州) 방면에서 군대를 조련했고, 익춘에야말로 제대로 싸우겠다는 태세를 보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